사회 속 개인주의와 이념 다툼이 날로 심해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모두가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주제가 있다면, 바로 ‘불가능을 극복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아닐까요? 그 기적의 형태는 각기 달라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안에서 ‘희망’과 ‘감동’이란 긍정적 감정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그중에도 ‘청각장애 아이돌’이란, 애초에 개념조차 성립될 수 없었던 불가능을 가능으로 실현한 ‘빅오션(BIG OCEAN)’의 이야기는 특히 더 남다른 전율을 남깁니다. 이전에는 가수가 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얻었다가 극복한 사례가 종종 있었을 뿐이죠. 반대로 장애 환경에서 가수로 데뷔, 그것도 춤추고 노래하며 기성 아이돌과 같은 팬덤 형성 및 비즈니스까지 실현한 일은 세계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인데요. 애초에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노래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을까요? 아마 빅오션을 처음 듣는 이들이라면 상상이 안 될 겁니다.
하지만 인간의 도전이 숭고한 이유는 결국 해법을 찾아내는 점에 있습니다. 단지 도전하지 않으면 답도 나오지 않을 뿐이죠. 빅오션을 키워낸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파라스타) 또한 마찬가지였는데요. 이에 ‘장애인을 위한 연예기획사’를 모토로 ▲장애를 위한 트레이닝 방식 ▲대중에게 어필하는 방식 ▲비즈니스 모델까지 모두 새로운 고민과 도전으로 파라스타가 K-팝 산업에 만든 또다른 기적을 소개합니다.
빅오션의 비전
2020년 9월 설립된 파라스타가 빅오션을 기획한 건 2023년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장애인은 아이돌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당연히도 너무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차해리 파라스타 대표 또한 “초기만 해도 빅오션 연습생들이 소리를 잘 듣지 못해 춤 연습이 원활하지 않았고, 아이돌의 춤선과도 거리가 멀어 한숨이 났다”고 회고하더군요. 하지만 비장애인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과감히 포기하고, 시야를 청각장애 환경에 집중하며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들리지 않으면 느끼면 된다”는 마인드로 말이죠.
이 가운데 파라스타가 개발한 시스템이 바로 ‘오감 메트로눔’입니다. 음악의 박자를 진동으로 바꿔 스마트워치를 통해 느끼게 하거나, 박자를 시각적 사인으로 바꾼 뒤 화면을 통해 확인하도록 하는 대안적 방안으로 지금의 빅오션을 만든 핵심 시스템으로 꼽힙니다.
노래는 어떨까요? 청각장애인은 듣지 못하므로 대부분 말을 못하거나, 하더라도 발음과 톤이 어눌할 수밖에 없습니다. 파라스타는 이 대목에선 ‘합의점’을 찾아냈습니다. ‘가창’은 어려워도 음이 상대적으로 단조로운 랩은 각고의 노력으로 멤버들이 직접 가능한 수준이며, 멜로디는 인공지능(AI)과 음성합성 기술의 힘을 빌려 해결했죠. 최근 AI 기술은 ‘딥페이크’, ‘딥보이스’ 등 악용 사례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한편에선 빅오션 같은 기적을 만드는 일에 선하게 쓰일 수 있는 점은 분명 AI의 양면을 균형적으로 바라보는 일에 이처럼 좋은 선례가 되기도 합니다.
차 대표는 “빅오션은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수어로도 노래한다”며 ‘덕분에 시장에서 K팝 음악을 보이는 언어로 확장한 기여도 인정받고 있다”고 소개했는데요. 이런 장애·비장애 양면을 공략하기 위한 빅오션의 노력은 지금 비장애 아이돌 팬덤 시장은 물론, 이와 거리가 멀었던 장애 커뮤니티와 ESG(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를 추구하는 대기업들이 빅오션의 파트너를 자청하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인재&조직 잠재력
빅오션 멤버들의 노력 이면, 기획사로서 파라스타에 담긴 인적 비전도 인상적입니다. “장애 키워드가 더 이상 ‘가난’이나 ‘힘듦’과 엮이는 대신 ‘아이돌’, ‘명품’, ‘스포츠카’ 등과 묶이는 시대가 오면 그 사회는 장애로 인한 차별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란 기대와 실현을 위한 행동이죠.
이를 앞장서 지휘 중인 차해리 대표는 SBS, MBC, YTN의 아나운서 및 리포터, 앵커 등을 역임한 인물로 한때 SBS 예능프로 ‘골때리는 그녀들’에서 FC 아나콘다 멤버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습니다. 박진 파라스타 이사 또한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이사를 역임한 베테랑으로, 30년간의 엔터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파라스타에 제공하는 키맨으로 소개됐습니다. 이밖에 여러 대형 기획사, 콘텐츠 업계에서 활약한 이들이 파라스타의 전문적 팀워크 구축에 힘을 더하고 있고요.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의 조직문화입니다. 차 대표는 “처음과 달리 이제 모든 직원이 어떻게든 되겠죠”라고 말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청각장애 아이돌, 일반적인 아이돌이 100억원 쓸 때 3억원으로 데뷔하기 등 어려워 보이는 미션만 추구하다 보니 처음에는 “불가능하다” 말하는 직원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목표가 하나씩 현실이 되자, 이제는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드는 것이 파라스타만의 역량’이란 자부심이 조직 DNA로 깊이 자리잡았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이 때문에 파라스타는 이후에도 계속 불가능에 도전해야 할 사명을 지닌 기획사가 됐는데요. 이런 조직문화가 앞서 빅오션뿐 아니라 이들을 지원하는 파라스타 내에 각인된 것은 이들이 극복할 또다른 불가능, 지속가능성에 긍정적인 기대를 더해주는 대목입니다.
주요 성과 및 관전 포인트
하지만 단순히 ‘장애를 극복한 아이돌’ 콘셉트에 그쳤다면 빅오션의 이야기는 다소 빛이 바랬을 겁니다. 그러나 그 기적에 국제사회가 반응하고, 유의미한 비즈니스까지 이끌었다는 점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의 파라스타와 빅오션의 사례는 더 고평가됩니다.
파라스타에 따르면 빅오션은 이미 국내에서 세븐틴, 스트레이키즈, 있지, 라이즈, TWS 등 유명 아티스트들과 챌린지 협업 경험이 있고요. 해외에서는 유명 미디어 채널인 BBC, 폭스, ABC 등이 빅오션을 조명했고, 미국 빌보드에서는 ‘이달의 루키’로 빅오션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또한 데뷔 당일에는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축하 메시지를 직접 트위터에 올린 후 빅오션은 WHO와도 협업 중인데요. 이런 흐름에 이어 스타 등용문으로 알려진 포카리스웨트 디지털 광고 모델로 발탁된 점 역시 고무적입니다.
음원공개도 활발히 이뤄지는 중입니다. 데뷔곡인 ‘GLOW(빛)’은 1990년대 인기 아이돌 H.O.T.의 3집 타이틀곡 ‘빛’의 리메이크 곡으로 3040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희망적 메시지를 담아 눈길을 끌었죠. 두번째 곡 BLOW도 SNS 채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고요. 이처럼 콘셉트에 의지한 ‘반짝 스타’로 남지 않겠다는 파라스타의 의지와 시장의 긍정적 반응 또한 엿보입니다.
특히 올해 하반기에는 공식 앨범 발매도 예정돼 있는데요. 파라스타에 따르면 여기에 들어갈 곡들은 미국의 유명 작곡가가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함으로써, 글로벌 팬덤 형성이 목표라고 합니다. 차 대표는 “회사로서도 대형 IP(지식재산권)이 생겨야 비즈니스 유지가 가능하다”면서 “여기에 따를 부수적인 사회 효과 또한 그간의 어떤 프로젝트보다 장애인식 개선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 중”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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