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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텐츠 구성

우발적 문이과 융합 인재

“처음에는 사회학이 멋져 보여서 전공했거든요. 보통은 세상 보는 눈을 키워준다고 하잖아요. 실상은 사람을 좀 불편하게 만들던데(웃음)… 말 그대로 불편한 진실들까지 알려주니까요. 그래도 덕분에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세상의 작동 원리나 구조, 사회통계학과 방법론 등에 눈을 뜨게 됐죠. 저는 그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이 청년은 자라서 훌륭한 사회과학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 가운데 알파고로 촉발된 딥러닝 중심의 센세이션마저 사회학적 관점에서 해석해보려 컴퓨터공학 복수전공을 시작한 것이 분기점이었는데요. 이어서 운 좋게(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글로벌 AI 경진대회 캐글에서 입상함으로써 ‘우발적 문이과 융합인재’가 되어버린 까닭입니다. 게다가 그런 그를 이후에도 세상은 계속해서 AI와 조우하도록 만들었더군요. 마치 거부할 수 없는 필연처럼 말이죠.

결국 한때 술자리에서도 사회 현상의 원리를 토론하던 청년은 AI의 긍정적 가능성과 불편한 진실을 동시에 고민하는 인문학적 연구자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제네시스랩에서 AI 모델 개발 및 데이터 사이언스팀 리더를 맡고 있는 유지형 연구원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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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형 제네시스랩 AI연구팀·데이터사이언스팀 리더 (ⓒ 제네시스랩)

베버의 눈으로 본 AI 연구

가치 부여는 결국 인간의 몫

지형: (…중략) AI를 연구할 때는 가치합리성과 목적합리성의 조화를 빼놓을 수 없어요. 특히 AI에게 가치는 결국 인간만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되는 영역이거든요. 복잡한 얘기지만 축약해서 설명드릴게요.

지난 4일, 등 뒤로 명동성당이 훤히 보이는 제네시스랩 회의실에 앉아 유 연구원과 약 한시간 동안 나눈 대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소재도 결국 인간과 AI가 건강하게 공존하는 삶에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인상깊었던 대목은 앞선 말처럼 19세기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의 ‘합리성 이론’을 현재 AI 연구에 대입한 부분이었습니다.

여담으로 당시 옆에서 인터뷰를 참관하던 또 한명의 (알고보니)사회학 전공 직원도 “여기서 베버가 나올 줄이야!”라며 추억(?) 어린 탄식을 내뱉더군요. 확실히 이런 사회학문적 관점으로 AI를 논하는 연구자나 개발자를 저도 직접 마주한 건 처음이라 대화가 더 흥미로웠던 구석이 있었는데요. 어쨌든 합리성이란 거창한 개념이 AI 연구는 물론, 나아가 우리 모두가 AI와 공존하는 세상에서 왜 중요한지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AI 금쪽이’ 탄생을 막으려면

지형: 쉽게 말해 가치합리성은 어떤 선택에서 인간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올바르게 사고하는 영역이고, 목적합리성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찾아 행하는 영역이에요. 베버는 이 중 목적합리성에 갇힌 게 현대인이고, 그 경향은 갈수록 더 심해질 거라 예언했죠. 실제로 오늘날 AI도 목적합리성 측면에서 주어진 데이터로 명령을 처리하는 데에는 강하지만 사회적 가치의 측면은 반드시 인간이 조율해줘야 하는 부분이 커요.

이게 무슨 의미냐? 가치의 영역은 사람이 지속적이고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에요. 일례로 지금 챗GPT가 ‘나쁜말’을 하지 않는 건 개발 과정에서 사람이 좋아할 표현만 선택하도록 가치와 관련된 데이터를 철저하게 학습시킨 결과물이거든요. 사실 AI가 가치의 의미를 깨달았다기보단, 그럴 듯하게 흉내내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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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시스랩

그러면 그럴듯 해도 좋으니 세상의 모든 올바른 가치를 AI에게 학습시키면 완전한 AI가 탄생하느냐? 그건 아니에요. 가치관이란 모두가 제각각이고, 세상과 사회가 바뀔수록 계속해서 함께 변화하니까요. 그런 점은 사람이 계속해서 감시하고 AI에게 튜닝을 해줘야 할 영역이에요. 그 과정이 아마 무한하게 이어질 겁니다.

핵심은 그 역할을 우리가 계속 쥐고 가면서 AI와 구분된 사람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해야 해요. 그건 LLM(거대언어모델)의 발전과 맞물려 매우 빠르게 발전 중인 AI에게 사람이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기 위한 측면이 있고요. 동시에 더 양질의 AI 활용 가치를 찾아내기 위한 사회적 질문을 만들기 위한 바탕이기도 해요. 안타까운 건 그럼에도 아직 많은 사람이 ‘기술은 기술이고 나는 내 삶을 살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점이죠.

전인격적 AI를 꿈꾸며

‘사람’을 생각하는 제네시스랩

이를 포함해 이날 유 연구원과 나눈 많은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는 AI를 기술 진화에만 방점을 두고 볼 것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으로 오직 사람을 위한 AI로 육성해야 한다는 점이죠. 또한 대중이 기술 변화가 가져오는 영향에 둔감하다면 앞서 AI를 연구하고 만드는 기업은 이 문제를 더욱 예민하고 책임감 있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관련해 유 연구원이 제네시스랩에서 만족하는 점도 이곳이 어느 회사보다 전인격적인 AI 에이전트 구현1제네시스랩의 기술은 사람의 생각, 행동, 과거경험, 태도 등을 데이터화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Generative Agent(생성형 AI 인간)‘를 만들어내는 기술 연구에 총력을 다하는 중이다.에 방점을 둔 회사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제네시스랩의 대표 서비스는 AI 화상면접 솔루션인 ‘뷰인터 HR’2제네시스랩은 2019년 AI 영상면접 솔루션 ‘뷰인터 HR’을 개발했다. 2024년 기준 ▲현대자동차 ▲LG유플러스 ▲육군 ▲LH한국토지주택공사 ▲서대학교병원 등 150여개의 대기업, 공기업, 정부기관에서 뷰인터 HR을 채용 절차에 활용 중인다.인데요. 해당 솔루션만 해도 개발 및 고도화 과정에서 사람을 닮은 차세대 AI에 필요한 여러 인격적 기술 개발 노하우를 확보하게 합니다. 예컨대 AI가 전문 면접관을 대신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식으로 면접관의 평가 스킬을 학습하도록 하고, 면접 응시자의 언어적·비언어적 표현과 감정을 섬세하게 수집하게 하는 독자적 노하우3제네시스랩은 400만건의 실전면접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프트스킬 평가 AI 엔진’과 ‘BEI(행동사건면접) 방식 역량 평가 AI 엔진’을 개발했다. 전자는 면접자의 ▲자신감 ▲호감도 ▲신뢰감 등 총 9개의 비언어적 행동지표로 소통 능력을 평가한다. 후자는 구조화된 질문으로 응시자의 답변 역량을 평가하는 AI 엔진이다. 채용측이 검증하고자 하는 역량에 해당하는 행동지표가 지원자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판정할수 있다. 기법들이 쌓이고 있죠.

실제로 제네시스랩은 이를 이용한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앞서 제네시스랩 스토리팩 인재편 그룹 인터뷰에도 짧게 언급된 유 연구원의 입사 배경4“저는 면접관이었던 CAIO 대훈님이 기억에 남아요. 그때 저는 회사에 경영진의 조직운영 가치관, 리더십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졌는데요. 그때 대훈님에게서는 기술 연구에 매몰된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기 쉬운 ‘사람에 대한 진정성’을 느껴졌어요. 좁게는 조직에서, 넓게는 우리 기술이 사용된 제품이 사회에 미칠 직간접적 영향력을 깊게 고민하고 이해하는 느낌이었는데요. 여느 기술임원들과 다른 그 모습에 흥미가 생겼죠.에 ‘유대훈 CAIO(최고인공지능책임자)이 자사 기술과 제품이 사회에 미칠 직간접적 영향력을 깊게 이해하는 듯했다’고 언급한 대목이 있었는데요. 고도화된 AI 에이전트 개발을 준비하며 제네시스랩이 공통분모로 삼은 것도 ‘사람’이었습니다.

지형: 저희 서비스는 큰 틀에서 ‘채용’ 도메인의 뷰인터 HR과 ‘정신건강’ 도메인의 닥터리슨5제네시스랩이 서울대병원과 공동개발한 마음진단 앱으로, 사회공헌 활동 측면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도메인의 쥬씨(ZUICY)로 구분되는데요. 모두 사람과 AI의 상호작용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제네시스랩의 목표는 이 상호작용들을 더 쉽고 일상적으로 만듦으로써 아주 새로운 형태의 인공사회를 구현해 나가는 거예요.”

제네시스랩 뷰인터HR
뷰인터 HR 소개 이미지 中

AI 인재에게 필요한 스킬 그 이상

이 가운데 제네시스랩에서 AI 모델 연구와 데이터 분석 등을 겸한 유 연구원의 어깨도 무겁습니다. 모델과 데이터는 오늘날 AI의 성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거든요. 사람으로 치면 뇌구조와 경험에 해당하는 영역이죠. 이때 사람이 어떤 가치를 두고 AI를 설계하는지에 따라 AI의 성향도 밀접한 영향을 받는데요. 마찬가지로 사람의 성장 과정과 비유할 때 태교나 교육에 빗댈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유 연구원처럼 AI의 기초를 설계하는 연구자나 기업들이 어떤 가치로 AI를 만드는지, 대중은 그 결과물을 얼마나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필터링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 예고된 AI 중심의 거대한 사회변화의 향방을 가늠할 것입니다. 특히나 지금은 인간과 유사한 지능의 AGI(범용 인공지능)의 수년 내 구현 가능성이 가시화된 시점이기에 인문학적 AI 연구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죠. 돌아보면 이미 AI에게 점점 더 많은 단순업무를 맡기고, AI의 제안을 필터없이 쉽게 수용해가는(예컨대 유튜브 추천) 지금의 사회문화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모두가 시급하다고 말하는 AI 인재 양성도 보다 입체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분야를 넘나드는 여러 학문에 대한 깊은 이해, 그것을 인간에 대한 가치중심적으로 풀어가는 시각까지 고려하면 말이죠. 즉, 지금의 우리는 단순히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한 목적합리적 인재를 키울 것인지, 먼 미래를 보고 AI와 인간의 균형있는 사회 구현에 일조할 가치합리적 인재를 키울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기로를 마주한 시점을 마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형: AI를 공부할수록 느끼는 건 그야말로 21세기 최첨단 종합예술이란 점이에요. 최소한 ▲통계 ▲미적분 ▲선형대수 등 수학의 세부분야를 깊이 공부해야 AI의 작동 원리를 윤곽이나마 그릴 수 있더군요. 나아가 코딩에 대한 충분한 연습이 있어야 연구 레벨을 벗어난 활용이 가능하고요. 이를 안팎에 공유하려면 학술적 글쓰기의 일상화, 비전문가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한 비학술적 글쓰기 역량도 필요하죠.

더불어 AI를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기반의 서비스로 만드는 일은 또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어요. 하지만 이 틈에서도 AI 기술이 가져올 변화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우리의 오늘 대화처럼 사회과학적 측면의 큰 관점도 함께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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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시스랩

공론장이 필요한 시점

물론,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과 비즈니스를 생각할 때 모든 기업이 사회적 가치만 바라보고 AI를 만들 순 없습니다. 일례로 현재 전세계 AI 연구 선두에 서있는 챗GPT 개발사 ‘오픈AI’에서도 지난해 말 AI 개발 이념을 둘러싼 충돌이 있었죠. 오픈AI의 당초 목표대로 ‘안전한 AI’를 만들어야 한다는 가치합리적 이사회가 ‘AI로 먼저 돈을 좀 벌자’는 목적합리적 CEO 샘 올트먼을 기습 해고한 사건이었는데요. 의외로 올트먼 해고에 반발하는 오픈AI 안팎의 여론이 너무 거셌던 겁니다. 결국 불과 수일만에 올트먼이 CEO로 복귀하며 이사회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난 사건이었죠.

아마 이런 일이 안전한 AI 개발을 지지하는 이들에겐 다소 뼈아픈 결과였을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AI와 건강한 공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상업적·비상업적 선택 균형의 문제까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 연구원의 모든 말이 반드시 옳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전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형성해가는 시점입니다. 유 연구원의 또다른 바람처럼, 더 많은 연구자들이 올바른 AI 가치 형성을 위한 공론장에 나아오길 바래봅니다.

개인적으론 이 모든 분야를 가로질러 AI를 공부하는 건 굉장한 메리트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배움만 있고 나눔이 없으면 비대해진 저의 자아만 남지 않을까요? 나눔을 통해 세상과 연결된 자아가 되고, 서로의 생각과 비판을 주고 받는 성숙한 개인으로 성장하는 선순환의 삶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 유지형

AI 연구에 막스 베버를 논한 이유 [스토리팩-제네시스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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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건한

IT 전문미디어 디지털데일리 기자 겸 테크콘텐츠랩 총괄 에디터. ⓔ sugyo@ddaily.co.kr